어릴 적부터 줄곧 '국보1호'라고 배워왔던, 지금까지도 늘 '국보1호'라고 가르쳐왔던 숭례문이 한 사람의 방화로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국가의 자존심과 긍지가 불 타버렸다.'라는 지극히 국가적이고 민족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TV를 지켜보면서 숭례문이 붕괴되는 그 순간, 내 가슴도 같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으니까. "아~!!"하는 비명소리가 저절로 나왔던 것은 비단 나 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이들 말마따나 '설 연휴맞이 캠프파이어 하듯' 숭례문은 그렇게 우리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 나를 더 슬프게 하는 건, 국보1호 숭례문이 타 버린 현실이 아니다. 어찌보면 숭례문이 타 버린 건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설 연휴맞이 캠프파이어 하듯 사라진 숭례문

숭례문이 국보1호가 되는데에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은 일제시대 일본인들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임진왜란 당시 한양에 첫발을 내딛은 곳으로 기억하고자 하는 일본인들의 야심이 숭례문을 조선 고적1호로 지정한 것을 우리가 그대로 받아옴으로써 우리의 국보1호는 시작된 것이고보면, 국보1호 그 자체가 국가의 자존심이자 긍지라고 말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또한, 1961년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숭례문은 그 원형을 잃고 말았다. 우리가 지금까지 봐 왔던 숭례문은 이미 조선시대 당시의 공법을 완벽하게 재현해내지 못하고, 그 모양을 흉내낸 '이미테이션'이었던 것이다. 가슴 아픈 일임에 분명하지만, 역사의 올바른 정립을 놓고볼 때, 숭례문은 어쩌면 커다란 장애요인이었는지도 모른다. 숭례문의 존재 자체가 국가의 자존심과 긍지를 상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문화재가 국보1호로 존재했다는 것, 그것이 이미 국가의 자존심과 긍지를 심하게 훼손한 것은 아니었을까.
국민들 역시 숭례문이 '국보1호'라는 사실에 대해서 얼마나 긍지와 자부심을 느껴왔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숭례문을 볼 때마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그 존재에 마음 깊은 뿌듯함을 느껴왔던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애초부터 숭례문에 대한 가치와 의미가 희미했던 사람들이 불 타버린 숭례문을 놓고 분노를 일으킨다는 것 역시 약간의 '오버'처럼 보이는 것은 큰 무리가 아닌 것 같다.

애초부터 희미했던 국보1호로서의 가치와 의미

모두 타 버린 뒤에야 국보1호의 자존심을 찾는 국민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이번 화재에 직접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다. 지금 신문과 뉴스를 장식하는 내용들을 보라. 어느 누구하나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없다. 당시 숭례문 개방을 주도했던 이명박 당선자를 비롯해서, 문화재청은 그들대로, 중구청과  소방방채청은  또 그들 나름대로 사건의 원인규명보다는 이 사건이 자신과 무관함에 대해서만 소명하기에 급급하다. 어찌 이것이 단지 이번 사건에만 그치는 문제랴. 성수대교가 무너져도, 삼풍백화점이 박살나도 누구하나 진지하게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더군다나, 이제 대통령이 된다는 이명박 당선자는 숭례문을 국민성금으로 복구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한다. 물론, 나름대로 의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 1차적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사람의 입에서 나올 소리가 아니었다는 것은 알고 계시는지. 왜 그는 스스로 책임지는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걸까. 그저 매사를 BBK 다루듯 하는 그에게 국가의 5년을 맡겨야 하는 현실이 숭례문 화재보다 더 절망스럽다.

책임회피하는 이명박, 모든 일을 BBK 다루듯

그 가치의 중요성 여부를 떠나 숭례문은 서울이 가지고 있었던 커다란 자랑거리였다. 외국인들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 600년 이상을 지켜온 목조건축물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또 그 모양이 수려하고 아름다웠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그 자랑이 사라져버린 지금, 국민들에게 무슨 말이 위로가 되겠나.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불 타버린 숭례문을 다시 복원하는 것보다, 모든 국민이 자랑스러워 할 국가의 근본정신을 지키고 이어가는 일 아닐까. 주변의 모든 일에 책임의식을 갖는 일, 모든 국민의 애국심을 받기에 합당한 국가를 만드는 일, 이것이 불 타버린 숭례문을 복원하기 전에 되살려야 할 우리의 얼임을 이번 화재로 절실히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란다.
아무도 그 가치를 실제로 인정해주지 않았던 우리의 국보1호 숭례문은 자신의 몸을 산화함으로써 우리에게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으로써 국보1호로서의 소임을 다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숭례문이 가지는 국보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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