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드디어 칼을 뽑아들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임을 분명히 했고, 인수위의 월권에 대해서도 분명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정권 말기의 대통령은 늘 외로운 존재였기에 노무현 대통령의 이같은 움직임은 마치 우리나라에 없는 국제선 열차를 외국에서 보는 것만큼이나 생소하고 어색하기 이를데 없다. 하지만, 취임도 하기 전에 벌써 권력을 다 쥔 것처럼 전횡을 일삼으며, 참여정부의 모든 것을 다 부정하면서도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유행어만큼은 5년을 더 가져가고자 하는 이명박 당선자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비겁함에 비하면, 그의 소신은 분명 칭송받아 마땅한 구석이 있다.
칭송받아 마땅한 노무현의 소신
노 대통령의 말대로, 인수위가 정부조직개편안을 참여정부에서 통과시켜내고자 하는 것은 정부조직개편에 대한 실패를 대비한 일종의 보험이다. 성공을 거두었을 경우, 자신들의 업적이라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을테지만, 혹시라도 실패하게 되면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를 외쳐버리고자 하는 고도의 계산이 숨어있는 것이다. 정부조직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 퇴임을 앞둔 대통령이 새로 출범하고자 하는 정부의 발목을 잡는다고 협박을 해댈 터이고, 이로 인해 악화된 국민의 여론을 감안해 대통령이 그들의 뜻을 마지못해 수용하는 식으로 과거의 전례를 답습하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있는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대통령 당선 직후 '섬기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현재 이명박 당선자와 인수위의 행보를 지켜보면 그 섬김의 대상이 '국민'이 아닌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무엇을 섬기는 대통령이 되려나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하는 5년동안 국민들이 편한 삶을 살지 못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모두 노무현 대통령의 잘못이라고 할 만한 객관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난 묻고 싶다.
경제파탄으로 신용불량자가 양산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카드 빚이 늘어 신용불량자가 양산된 것이 어떻게 정부만의 책임인가. 신용정보 없이 무분별하게 카드발급을 해 준 카드사, 그리고 발급받은 카드로 규모없는 씀씀이를 보였던 일반인들에게는 책임이 전혀 없다고 할 것인가 말이다. 삶이 어려우니, 카드빚이라도 얻어서 살아보려 했다고 항변할 수도 있겠으나, 스스로의 씀씀이를 줄여보기 위한 노력은 왜 해보지 않았는지 따져묻고 싶다. 정말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겐 카드빚도 그림의 떡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종부세 폭탄으로 신음했다고 한다. 종부세가 급격히 오른 것은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대한민국에서 종부세를 낼 수 있는 여력이 있음을 감사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이야 말로 어느 광고에서 말하는 대한민국 1% 아니던가?
또, 청년실업이 늘었다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정말 양심적으로 생각해보자. 오늘날의 청년실업이 구조적 실업인가를 말이다.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대기업만을 선호하고, 공무원 되겠다고 돈벌이 안하고 너도나도 학원으로, 고시촌으로 부나비처럼 몰려드는 청년 실업자의 실업문제는 자신의 능력보다 더 높은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자처한 자발적 실업이 대부분이다. 남이 한다니까, 해서 좋다니까 아무 생각없이 너도나도 달려드는 것이다. 절대빈곤자들에게 복지혜택 더 주는 것에 대해서는 '좌파'니 '빨갱이'니 운운하면서, 자발적 실업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정부를 무능하다고 이야기 한다면, 앞뒤가 안 맞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묻고 싶다. 모두가 아무런 기준없이 제 멋대로 산다. 그리고는 국가에서 자신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며 원망과 저주를 일삼는다. 좀 먹고 살만해지니까 우리나라 국민들, 너무나 비겁해졌다. 도무지 스스로에 대해 책임질 줄을 모르니 말이다.
스스로에 대해 책임질 줄 모르는 비겁한 국민
얼마 전 정부조직개편안을 놓고 벌어진 TV토론회에서 패널로 참석한 박재완 인수위 정부혁신TF팀장은 '국민이 선택한 한나라당의 정책에 대해 만약 그것이 실패했을때는 다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니 우선은 인정해 주고 믿어달라.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한 정당의 핵심인물의 발언치고는 상당히 위험한(?) 발언이라 생각되기도 했지만, 내가 설령 정부조직개편안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박 의원의 소신과 열정만큼은 인정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대통령 체면이 있는데, 정책에 대한 철학과 소신이 적어도 박재완만큼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기껏 뽑아줬더니, 노무현 만도 못하더라.' 이런 소리 들으면 한나라당 출신으로서 꽤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적어도 대통령이라면, 비겁한 국민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 설령 업적이 없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괴로웠다 하더라도, 국민에게 정의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사명감 있는 대통령이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가치가 있는 이유는 그래서이다.
이명박, 적어도 박재완만큼만 해라
난 이명박 당선자가 지금과 같은 비겁함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권에서 수립한 정책에 대해 떳떳하고 당당한 대통령이 되기를 소망한다. 정부조직법 개편안이나, 영어몰입교육과 같은 교육정책 등 여론의 지탄을 받는 정책에 대해서, 비록 돌을 맞고 피를 흘릴지언정, 자신의 소신과 철학은 뚜렷이 밝히고 실수에 대해서는 분명히 인정하고 개선을 서슴지 않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수위의 활동이 이제 한달여 흘렀다. 기대보다는 실망과 우려가 더 큰 것이 지금 현재의 여론이다. 하루하루 무슨 얘기가 나올지 불안해 죽겠다는 푸념부터, 집권 시작 전부터 이렇게 휘두르는 정부는 처음 보았다는 분노까지 우려의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처음에는 모르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다듬어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관대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모르고 한 행동 속에 그들의 진정한 기본철학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다. 한달여의 인수위 활동은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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