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오래 전 일이다.
지난 2002년 6.13 지방선거에 이명박 전 의원이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그가 서울시장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 했었다.
그 이유는 '기업경영'과 '행정'엄연히 다른 영역이기 때문에, 기업경영을 잘했다고 해서 올바른 행정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마치 초등학생이 구구단 좀 잘 한다고 시도 잘 쓰고 운동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이 같은 반응에 주위 사람들은 '그는 훌륭한 기업인이며, 동시에 성공한 정치인'이라며 결국 행정의 최고책임자도 정치인이 되는 마당에 정치에서 성공했으면 행정도 잘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제 와서 그들에게 묻는다. 경영을 잘했고, 정치도 성공했다는 그가, 지금 행정을 잘하고 있는지.
정치와 행정은 뭐가 다를까
어떠한 형태, 어떠한 성격의 조직이든 간에 그 조직 내부에 '정치'와 '행정'은 공존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정치와 행정을 올바르게 구분해내는 사람들은 흔치 않은 것 같다.
정치-행정 이원론을 주장한 윌슨의 주장이 정치학에서 행정학을 분리한 최초의 시도라고 한다면, 정치와 행정은 다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겠다.
그러나, 최근에는 '의회 중심의 행정'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정치와 행정이 완전히 분리된 모습을 지니고 있지만도 않은 것 같다.
이렇다보니, 정치와 행정에 대한 경계 자체도 모호해지고, 정치인이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의 자리에 올라가는 모종의 아이러니(?)도 발생을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다면, 조직 내에서의 정치와 행정은 어떠한 함수관계로 맺어져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학문적 고찰은 도처에 존재하고 있으며, 이론적으로 그 의미가 명백하게 정리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되나, 실무 차원의 논의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우선 정치는 행정에 비해 더 '인정적'이다. 오늘날 행정의 커다란 병폐요인 중 하나가 '온정주의 문화'인데, 이 역시 행정가들의 정치적 행동의 산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인들에게 일의 과정이나 성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인맥이다. 그래서, 이들은 사람을 꽤 중시한다. 지나치게 되면 편가르기가 된다. 소위 보스기질을 가진 이들이 대체로 정치를 잘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사람관계를 원만하게 하는 일만큼 인간사회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내 사람 챙기기'만 잘 해도 정치는 거의 성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전두환이 그렇지 않은가.
문제는 이들의 정치력은 조직의 성과와 무관한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이 내 사람 챙기는 일에 급급하게 되면, 업무의 절차나 과정은 하찮은 것으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논리는 단편적이고 근시안적 시각을 강요하게 되고, 이에 따라 조직의 목표는 갈 길을 잃고 표류하게 된다.
구성원에 대한 평가 역시 조직 내의 업무성과와는 별개로 조직 수장과의 인간 관계에 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구성원의 조직 장악은 조직 목표 수립에 적잖은 부담이 되기 마련이다.
행정은 정치가 지닌 이러한 병폐에 확실하고 근본적인 처방을 제시한다. 우선 행정은 조직성과중심의 관리를 인맥보다 우선시한다. 행정담당자의 리더십 역시 관리차원의 성격을 벗어나지 않는다. 능력에 따른 차별은 '차별'이 아닌 '구별'로 인식하며, 여기에 '성역'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프로스포츠에서 선수의 기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아무리 뛰어난 상품성을 지닌 선수라도 본 경기에 투입하지 않는 것처럼, 행정차원에서의 조직운영은 어찌보면 '비인간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행정의 궁극적 목적은 조직성과의 향상이다. 구성원을 조직의 한 부속처럼 여기는 인간소외의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행정도 인간의 행동인 바, 정치적 요소가 완전 배제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올바른 행정은 인정에 얽매여 조직전체에 해를 끼치는 일은 범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하나는 한 조직 내에 반드시 정치와 행정은 공존해야 한다는 사실이며, 또 하나는 대부분의 인간은 행정보다 정치를 더욱 더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행정에 비해 더 인정적인 정치가 사람들의 선호를 받는 것은 어찌보면 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호적인 정치에 치중하여 행정을 등한시하게 되면 조직 내의 정치와 행정의 균형은 깨어지고, 조직은 그 목표달성을 위한 험난한 장애를 조직내부에서부터 맞닥뜨려야 한다.
조직을 위한 바람직한 조직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조직 내부의 정치, 행정에 대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것은 조직의 수장이나 구성원의 대부분이 정치(행정)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면, 스스로 그 성향에 맞춘 행정(정치)적 성향을 보여주는 유연함이다.
더욱이 정치가 인간에게 더욱 친숙한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행정적 성향을 버리지 않는 희생은 조직의 목표달성을 위한 커다란 동인이 아닐 수 없다.
정치와 행정, 그 공존의 딜레마
정치란 마약과 같은 것이어서, 한번 맛을 들이면 쉽게 헤어나오기 어렵다. 하지만, 정치는 또 인간에게 호의적인 관계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반면에 행정은 보약과 같은 것이어서 한번 맛을 들이기는 쉽지 않고, 비 인간적 성향으로 말미암아 내부 구성원에게조차 환영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행정은 그 구현에 시스템적 사고를 요구하는 바, 매우 복잡해 보이지만, 근본 목적에 충실한 관계로 중심이 흐트러지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또한 시스템적 사고를 통한 조직운영의 테크닉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묻는다. 정치를 알고 행정을 아는 상황이라면, 당신들은 당신들의 조직 내에서 정치지향적 인물이 될 것인가, 행정지향적인 인물이 될 것인가. 어느것이 더 가치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선택은 당사자 스스로가 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정치 또는 행정 둘 중 하나만 알고 정치나 행정을 하는 사람이나, 행정을 모르고 정치를 하는 사람 가운데(정치를 모르고 정치를 할 수는 있다. 쉬운 일이니까) 제대로 된 결과를 내는 사람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설령, 만족스런 결과가 나온다 하더라도, 그 결과가 모두에게 '보약'같은 존재가 되는 경우 역시 보지 못한 것 같다.
마약같은 정치(政治)와 보약같은 행정(行政)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6월 9일 자신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을 비롯한 원로들과의 대화에서 "내가 경영과 행정은 알았는데 정치는 몰랐다."고 했다고 한다. 그가 성공한 기업인이라 하니, 경영을 안다는 것은 인정하더라도, 그가 행정을 알았을까 하는데는 의문을 던지지 않을수가 없다. "내가 경영과 행정은 해봤는데, 정치는 안해봤다" 이랬다면 또 모르겠다. 그렇다쳐도 국회의원 지내놓고 정치를 모른다는 건 말이 안된다. 어차피 인간은 정치적 동물 아니던가.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후 현재까지의 모습을 보면 그는 경영과 정치는 아는데, 행정을 모르는 사람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정치와 행정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논어의 이인편에 '아는 것을 아는 것,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것이라 하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라 했는데, 이명박 대통령은 그런 점에서 스스로의 현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몰라도 할 수 있는 마약같은 정치를 해보고 난 후, 서울시장 한번 거치고 나서 행정을 안다고 하는 오만함. 오늘 현재 이명박 대통령을 힘들게 만든 주범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맨 처음 현대건설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초심을 청와대에까지 가져다 놓았다면, 정말 훌륭한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무슨 일을 하면 욕을 먹던 노무현 대통령보다 더한 멸시를 받는 지금의 이명박 대통령을 바라보는 측은함과 함께 한숨으로 엉켜 나오는 요즘이다.
국민은 보약같은 대통령을 원한다는 걸 알 수 있도록, 이명박 대통령의 조속한 해독을 기원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