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일제고사'라고 불리는 시험을 놓고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학생의 정확한 수준측정을 통해 학습저하를 방지하고자 한다는 것이 일제고사를 실시하려는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의 입장이고, 학생들에게 무한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바람직한 교육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 이른바 참교육을 실현하고자 하는 일부 학부모와 시민단체의 반론이다. 이런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교과부는 일제고사 시행을 강행하였고, 학부모와 시민단체는 고사 응시거부로 실력저지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순수한 열정으로 아이들과 호흡하던 젊은 교사 7명이 교단을 떠나게 되었다. 아이들의 '교육'을 놓고 벌어지는 일이지만, 그 과정은 결코 '교육'스럽지 못한 것이 심히 유감이다. 어느 편이 옳고 그르냐를 따지기 조차 민망한 일이 되어버렸다.

전혀 교육스럽지 못한 교육 논쟁

적어도 우리나라 안에서는 학생이 자신의 적성과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라면, 우선 학생이 공부를 잘 해야 하고, 집안의 경제력이 우수해야 한다. 뒤집어 말하면, 공부를 못하는 학생의 적성과 창의성은 진지한 검증 논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채 '말짱 황'이 되어 버리고, 아무리 우수한 적성과 창의성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경제력이 뒷받침 되지 아니하면 그 역시 '도루묵'이 되고 만다.

이런 현실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인식하고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면, 교과부의 대책은 일제고사라는 전 근대적인 방식보다 더 세련되고 참신했어야 한다. 어설픈 일제고사로 불을 보듯 뻔히 보이는 학생과 학교의 서열화를 이루느니 차라리 중,고교 평준화 정책을 포기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국제중 설립 강행을 추진하는 모습을 보면, 현 정부의 중,고교 평준화 정책의 지속 이행 의지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성적과 경제력으로 적성과 창의성의 우수함을 진단하려는지. 이것을 교육이라고 해야할 지 의문스럽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적성과 창의성보다 우대받는 성적과 경제력

매년 학기 초마다 강의 현장에서 내가 학생들에게 물어보는 한 마디가 있다.

'너희들 전(前) 학년에서 어디까지 배웠니?'

학기초에 그냥 교과서 처음부터 나가면 되지 이게 무슨 어처구니 없는 짓인가 싶어도 어쩔 수 없다. 우리 아이들은 이전 교과내용을 다 배우지 못하고 다음 학년으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사교육 현장에서는 학생 승급에 대한 절대 기준을 성적에서 찾는다(물론 학부모의 입방아에 좌우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공교육 현장의 학생 승급 기준을 '출석일수'에 맞춘다. 게다가 학교는 합창대회, 체육대회, 소풍 등 각종 행사로 수업일수를 갉아먹는다. 여기에 격주 토요휴무제까지 겹쳐 학생들의 수업일수는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상황이 이런대도 학교는 교과 내용을 온전히 다 가르쳐주지 않는다. 대단원 한 두개 정도 지나치는 건 기본이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은 1학년 내용을 다 배우지 못하고 2학년으로 올라오고, 또 2학년 내용을 다 알지 못한 채 3학년으로 올라간다. 학부모들은 학원교재가 한쪽만 덜 풀려있어도 학원으로 부리나케 전화질을 해대면서 공교육 현장의 나태함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정도는 달라도 교재비, 수업료 받는 건 다 같은데 차별이 심하다.

일제고사는 이러한 공교육의 나태함을 상쇄하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다. 연합고사를 실시하는 비평준화 지역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평준화 지역 학생들보다 우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중등과정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고등과정을 온전히 이수했다는 실증이 되어야 하는데 이같은 상황이라면 교육의 질적 저하를 막을 길이 없다. 날로 기승을 부리는 심각한 공교육의 나태함을 해소하려면 일제고사는 반드시 시행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공교육의 나태함

일제고사 형식의 시험이 꼭 필요하다면 그것이 지금처럼 단순 서열화로 학력을 측정해서는 곤란하다. 반대로 일제고사를 반대하려면, 그 역시 단순서열화 이외의 다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교과부가 일제고사의 폐단을 모를리 없고, 그 폐단을 감수하고서라도 시행하겠다고 하는데는 분명 다른 이유가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현 정부에 상식을 기대하기 힘들지만 상식선에서 생각하면 그렇다.).

그런데 지금 드러나고 있는 일제고사에 대한 찬반논쟁은 자기성찰은 없고 남 탓하기에만 급급해 보인다. 교과부는 일제고사를 명분으로 학교와 학생을 길들이려는 구태를 반복하려는 건 아니었는지, 학부모들은 정말 두려운 것이 서열화로 인한 학생들의 의욕저하인지, 아니면 자기 자식이 1등 혹은 상위권이 아니라는 열패감인지부터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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