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대영박물관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가 시작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참으로 반갑기 그지 없는 소식이다. 세계 3대 박물관이라 일컬어지는 대영박물관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가 시작된다면, 보다 많은 한국인들이 이 곳에 들러 세계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나는 지난 2007년 11월, 대영박물관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당시에는 아시아권 국가 언어는 일본어, 중국어 서비스가 전부였다. 나는 안내직원에게 "왜 한국어 안내 서비스는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안내직원은 "외국어 안내는 이게 전부"라는 원론적인 대답만 할 뿐이었다.

그래서 난 다시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1인당 GDP도 낮고, 또 일본 문화의 원류는 한국의 문화인데, 이런 후진국들에 대한 안내는 하면서, 한국을 위한 안내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따졌다. 안내원은 매우 난처해 했다. 내가 너무 민감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기도 했을거고, 또 내 영어가 무슨 소린지 못 알아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긴, 한국어 안내 서비스가 안되는 것이 어찌 안내 직원 탓이겠는가.

그랬던 대영박물관에서 이제 한국어 안내 서비스가 제공 된다는 소식을 들으니 그 때의 기억은 아련한 추억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 같아 참 흐뭇하다. 그러나, 대영박물관이 나를 당황시켰던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대영박물관에서 조선 당백전을 만나다

대영박물관에는 고대 유적부터 시작해서, 그러한 유적 속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과 사상에 이르기까지 매우 상세한 설명이 되어 있었다. 한참을 구경 하다가, 나는 맨 마지막 관람코너에 이르렀다. 그곳에서는 고대시대부터 현재까지의 화폐를 모아 전시하고 있었는데, 자원봉사자들의 관리 아래 눈으로 볼 뿐 아니라 손으로 만져볼 수도 있도록 허락해놓은 것이 이색적이었다.
그 곳에서 나는 조선시대 우리나라의 당백전도 볼 수 있었다. 세계적인 박물관에서 우리나라의 유물을 보다니. 난 너무 기쁜 나머지, 은행근무경력이 있다는 자원봉사 할머니에게 '이 동전이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던 동전'이라고 자랑을 했다. 그랬더니 그 자원봉사 할머니는 나에게 충격적인 한 마디를 던졌다. 간단한 말이었지만, 지금도 그 말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Are you Japanese? (일본 사람이에요?)"

이게 웬 지렁이 이단 옆차기 하는 소리냔 말이지. 난 한국사람임을 밝혔고, 그 동전은 일본 동전이 아니라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경복궁을 중건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동전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중학생들을 지도하는 사회과 강사인데, 이런 기초적인 내용을 모르고 어찌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겠냐는 나름의 전문성까지 부각 시켜가며, 설명을 했건만, 이 자원봉사 할머니는 내 말을 곧이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렇게 옥신각신하는 장면을 지나가던 한 관람객이 보았다. 그 관람객은 자원봉사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자원봉사 할머니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 말했다. "이 한국 젊은이가 이 동전을 자기네 나라 동전이라고 우기는군요."

그 관람객은 내게 진짜 그렇게 말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고 말해줬다. 그랬더니 이 관람객, 너무나도 당연한 듯 이야기 한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거라고. 그 동전은 일본 동전이 맞다고 말이다. '남대문 문턱이 있는지 없는지는 안 가 본 사람이 더 잘 안다'더니, 딱 그 짝이다. 꼭 다리 세 개 가진 사람들 사이에 두 다리만 가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조선의 당백전을 일본의 것이라 알고 있는 대영박물관

한국에 대한 역사왜곡이 아무리 심하다 한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외국 사람들은 우리의 식민역사 때문에 우리의 모든 역사를 일본의 역사로 알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당백전은 조선, 중국, 일본 모두가 발행된 적이 있는 화폐이다. 그 중 조선의 당백전과 일본의 당백전은 그 모양이나 색깔부터가 판이하게 달라서 도저히 혼동할 수 없는 것이라는 건 역사를 공부한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이제 대영박물관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가 된다고 하니, 그러한 역사 왜곡도 바르게 잡았으면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반크, 도와줘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 : 좌측이 조선의 당백전, 우측이 일본의 당백전입니다. 일본의 당백전은 타원형으로 되어 있어 원형의 조선의 당백전과 확연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내가 본 건 분명히 원형이었다구요~!!! ㅡO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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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8월 15일이 이슈화 되는 것이 의아하다. 건국절이라는 낯선 이름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국면 전환용 이슈거리를 만드는 것이 일상화가 되어버린 이명박 정부의 행태가 이제는 낯설지 않을 법도 한데, 늘 한결같이 해마다 오늘이면 광복을 논하다가 뜬금없이 건국을 논하는 현 상황에 이르고 나니 솔직히 기가 막혀 화도 나지 않는다. 언론조차 이에 동조하는 모습은 언론이 정권의 하수인이라는 오명을 벗기엔 아직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언론 속의 오늘은 이미 건국절

8월 15일을 광복절에서 건국절로 변경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 법률안'이 발의되었다고 한다. 공동발의자인 한나라당 현경병 의원은 뉴시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광복'이라는 의미는 추상적이며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의 건국을 광복과 함께 기념하자'는 의견을 밝혔다. 내 눈에 보이는 그의 인터뷰는 현 정권에 영합하려는 자신의 행동을 역사적으로 정당화 하기 위한 안쓰러운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인터뷰를 살펴보자.

[뉴시스의 현경병 의원 인터뷰 보기]


우선, 광복절이라는 의미가 추상적이라는데 대한 그의 근거는 한글에 대한 모독이자, 그가 지닌 사대주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예라 할 수 있다. 영어로 표현되지 않는다고 해서 추상적이라는 논리는 현경병 의원 개인의 사고인지, 아니면 그가 속한 한나라당의 보편적인 정서인지부터가 궁금하다. 한글로 표현되는 의미가 영어로 표현되지 않는다면, 그건 영어의 언어기능이 한글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지 결코 그 의미가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이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 공통어라는 지위에 있어 현 정부의 엽기적인 추앙을 받고 있는 영어는 사실 '개운하다'라는 의미조차 표현하지 못하는 한심한 언어 아니던가. 현경병 의원도 사우나는 가봤을 터이고 그렇다면 개운하다는 그 느낌을 모르지 않을텐데, 그 의미가 영어로 표현되지 않아 추상적이라면, 사우나를 마치고 난 후 느끼는 개운함은 정녕 관념적이고 추상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우습다.

영어로 표현 안되면 추상적 의미?

또한 현경병 의원은 광복절이 건국절이 되면 우리 역사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에 '대한민국을 신생국으로 보는 시각이 문제'라고 말했다. 아마도 현경병 의원은 '건국(建國)'의 사전상 의미를 모르는 것은 아닐지. 광복절을 건국절로 칭하는 것 자체부터가 대한민국을 신생국으로 보는 견해라는 사실을 모르고 이야기 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 어이없고, 알고도 했다고 보자니 상당히 괘씸하기 짝이 없다. 우리나라의 시작을 개천절로 기념한다는 그가 어째서 대한민국의 시작에 '건국(建國)'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을까. 결국 그의 논리는, 본인의 부정과는 달리, 우리나라와 대한민국은 다르다고 생각하거나 대한민국의 시작으로 과거 우리의 역사는 소멸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모순을 무릅쓰고 광복과 건국을 동일 선상에 놓으려는 이유

건국절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현경병 의원의 논리 곳곳에는('우리가 연합군과 함께 2차대전에 참전했으니 '승전기념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라거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지 임시정부 자체를 계승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식의 말장난은 가치없으니 논외로 하더라도) 이렇게 결정적인 모순이 숨어있다. 이런 절대 모순을 무릅쓰면서 광복과 건국을 동일 선상에 놓고자 하는 그들의 속마음은 언론이 보여주는 '건국의 의미'를 통해 자명하게 드러난다. 한 사람의 위대함을 드높여 지지도를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하는 그들의 몸부림이 측은하게 느껴지지만, 그 한 사람을 포장하기 위해 역사왜곡은 물론, 민족의 자존심을 훼손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 것을 보면, 굳이 역사책 들춰가며 이완용만 욕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현재 발의되어 있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이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이건 명백한 대통령 탄핵사유가 되지 않을까. 탄핵이 아무리 가급적 지양해야 할 국가 보호를 위한 '최후의 수단'이라면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 법률안'이 통과되는 시점이 바로 그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1948년 8월15일은 건국(建國)일이 아닌 새로운 체제의 정부 수립일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광복이 주는 의미가 얼마이던가. 어느 나라의 역사가 외침을 통해 침략당한 주권을 다시 회복한 적이 있더란 말인가. 이렇게 그 어떠한 것과 견줄 수 없는 숭고한 의미를 지닌 광복과 건국을 동일 선상에 놓고 의도적으로 광복의 의미를 반감시키려는 그들을 좋게좋게 생각하고, 긍정적인 안목으로 보라 하시면, 새로운 체제의 정부 수립을 '건국'이라 왜곡하는 이들에게 이명박 정부수립을 건국으로 이야기 해 주지 않아서 고맙다고 이야기 해야 하는 것일까.

분명히 알아두자. 국호가 바뀌었다고 해서, 정부체제가 바뀌었다고 해서 건국이 아니다. 1948년 8월 15일은 고조선 이후 반만년을 이어온 우리 민족이 민주주의 공화국 체제의 새로운 정부를 출범한 날이다. 따라서, 그 명칭은 '건국절'이 아닌 '대한민국 정부 수립 기념일'이라 해야 함이 옳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8월15일을 광복절로 기념하는 까닭은 국가의 광복이 대한민국의 정부 수립보다 우리 민족에게 더 의미있고 가치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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