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자'와 '당선인'이라는 호칭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SBS 8시 뉴스에서 '당선인'의 호칭을 '당선자'로 바꾸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같은 시각 방송된 KBS2TV 뉴스에서 '당선인' 호칭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나타난 변화여서 주목을 끌고 있다.

이명박에 대한 호칭 바꾼 SBS

헌법재판소의 권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선인' 호칭을 사용하고 있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이들의 요청에 암묵적으로 동의라도 하듯 그들이 원하는 호칭을 사용하던 방송사 가운데서 유독 SBS만이 독자적으로 이명박에 대한 호칭을 '당선자'로 바꾼 배경은 과연 무엇일까.

호칭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위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장애자'를 '장애인' 또는 '장애우'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 위상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호칭에 앞서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인식의 전환, 이것이 우선되지 않고서는 상대에 대한 존중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대통령에 대한 위상과 신뢰가 확보되면 당선자라고 부른다 해도 그것이 갖는 의미와 위상은 저절로 높아지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호칭 아닌 신뢰확보

MBC의 반응이 나오려면 40여분 기다려야 하지만, 현재로 봐서는 당선인의 호칭을 그대로 사용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엄연히 헌법에 명시된 호칭을 무시했던 인수위와 언론의 오만함에 대해 SBS의 변화는 그야말로 단비와 같은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SBS의 용기가 모든 언론으로 확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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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이명박 당선자의 대선공약을 연이어 수정하고 있다. 부동산 정책에 대해 1년의 유예기간을 둔 것을 시작으로, 당장 폐지할 것 같던 수능등급제도 2년은 더 유지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데 이어, 오늘은 통신요금 20%인하공약이 사실상 무산되었을 뿐 아니라 경제실질성장률 7% 달성 공약을 잠재성장률로 후퇴하는 등 연이어 이명박 당선자의 공약은 시행에 들어가기 전 검토단계에서부터 발을 하나, 둘씩 빼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시작 전부터 뒷걸음을 시작한 이명박 당선자의 공약

이명박 당선자의 공약의 주요핵심은 '경제회생'이었다. 국민들은 그의 공약을 그의 도덕성보다 우선하여 지지했다. 또한 인수위는 '이명박에 대한 지지는 그가 발표한 모든 공약에 대한 지지'라고 말하며, 공약실천에 대한 강한 자신감마저 보였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명박의 공약과 행보에는 치명적인 모순이 존재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명박 당선자가 '프랜들리 비즈니스'라는 국적불명의 콩글리쉬를 구사하며 목청껏 기업에게 유리한 정부가 되겠다고 선언했으나, 통신요금 인하와 같은 민생 현안문제의 해결은 비즈니스에 절대 프랜들리하지 못하다는 점은 그 단적인 예다. 이명박 당선자의 대표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 건설도 국민의 여론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했다가, 착공 후 설득을 병행하겠다고 하는 등 공약실천단계에 굉장한 혼선을 예고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한반도 대운하는 낙동강 유역의 개발수준에서 그치게 될 것이라는 다소 비관적인 전망까지도 나오고 있다. 이쯤 되면 이명박 당선자의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의심하게 한다. 그러나 속았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공약실천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약의 타당성 검증이 공약수립 당시에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현실성 검증 미흡한 공약... 혹시 포퓰리즘?

한나라당은 지난 5년 간 꾸준히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포퓰리즘에 의한 정권'이라 비난해왔다. 이런 행동은 국민들의 머리 속에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를 부정 인식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지금까지 이 포퓰리즘으로 엄청난 지지율 확보에 성공했다. 보수언론의 후원을 얻은 경제파탄론으로부터 5.31 지방선거에서의 서울시장 선거는 한나라당이 추구한 포퓰리즘의 승리였다. 참여정부의 포퓰리즘이 실천력 부재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면, 한나라당의 포퓰리즘은 그들이 끊임없이 비난하는 참여정부의 포퓰리즘보다도 더욱 심각한 현실감각과 정치철학의 부재를 노출하고 있다. 국민이 '포퓰리즘'하면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연상하는 틈을 이용하여 한나라당과 이명박 당선자는 포퓰리즘의 속성을 매우 지능적으로 이용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참여정부 정책에 무임승차하려는 이명박 정부

이명박 당선자에 대해 언론은 5년 전과는 다르게 너무나 우호적이다. 실현여부에 관계없이 일단 터뜨리고 보자는식의 공약이 난무하는 가운데서도 언론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너무나 조용하다. 참여정부의 정책에 무임승차하려는 인수위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너무나 관대하다.
취임 전부터 이렇게 얼굴을 바꿔대는 정권을 믿고 5년을 살아야 한다면, 정말 암담하다. 위장전입, 위장취업 등 각종 위장에 능숙했던 과거전력을 감안하면 이같은 변신이 새삼스러울 일은 아니지만, 나쁜 버릇은 빨리 고치는 편이 모두를 위해 낫지 않을까. 비겁하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는 것은 비단 나 뿐만은 아닐 듯 싶다.

한나라당은 이번 대선을 통해 최초로 정권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했다. 이명박 당선자가 이전 정부와의 연계를 부정하고 말 그대로 정권교체를 이루었다면, 당당하게 참여정부와의 대척점을 형성하는 정책을 바탕으로 당당하게 정면승부할 것을 제언한다. 정권찬탈과 독재에 익숙한 이들에게 무리한 부탁일 수는 있다. 그러나, 5년간 한결같이 부정하고 비난하고 파괴하려던 정부의 정책을 일부라도 인정하는 모습은 아무리 묻지마 지지를 보냈다고는 하나 한나라당에 최초로 정당성 있는 정권을 허락한 국민에 대한 배신이지 않나. 현실가능한 정책으로 당당하게 참여정부에 맞서보라. 판단은 국민이 한다. 그리고 알게 될 것이다. 진정한 무능이 무엇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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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정부에서 나타나는 가장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하나의 정책이 연속되기 힘들다는 점이다. 장관이 바뀌면, 이전 장관이 추진하던 정책은 용도폐기 되기 일쑤이고, 대통령이 바뀌면 과거의 정책을 수정하면서 이전의 정책은 '실패한 정책'이라고 낙인찍는다. 물론, 그 가운데는 정말로 실패한 정책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패한 정책보다는 '실패된 정책'이 많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명박 당선자가 현재 수능등급제에 보완을 포함한 대학입학제도를 전면 개편하겠다고 나섰다. 여기에는 대학입시의 완전 자율화로부터 시작하여 교육부의 해체에까지 이르고 있다. 기존 정책을 전면 부인하고 새로운 정책을 내세우겠다는 구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수능 등급제 - 제도의 문제인가, 환경의 문제인가

참여정부에서 추진한 '수능등급제'는 고교내신의 정상화를 전제로 만들어진 정책이다. 수능등급제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신에 대한 신뢰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내신50% 이상 반영하도록 한 것은 이를 말해준다. 고교 공교육의 정상화는 수능등급제가 갖는 궁극적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고교현장에서는 공공연히 '내신 부풀리기'가 행해졌고, 대학은 이런 분위기에서 산출된 내신을 신뢰하지 않았다. 30%이상의 내신반영을 요구하는 교육인적자원부에 맞서 사립대학은 22% 반영을 발표하며 거부했다. 더 나아가 내신등급 간 격차를 줄여 사실상 '내신 무력화'를 이루어내고 말았다. 이렇게 내신의 비중이 줄어들다보니 입시에서 수능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높아지게 되었고, 점수 대신 등급으로 구분하는 수능결과에 대한 불만이 수능등급제와 현 정부에 쏟아지고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입시의 대학자율화 - 공교육과 사교육의 전치 현상 부추기는 결과 낳을 것

수능등급제가 문제를 일으켰다면, 제도 자체를 없애자고 이야기 하기보다 그 제도의 취지와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여 근원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함이 마땅할 것이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수능등급제의 문제점은 고교내신의 신뢰추락으로 인한 내신 무력화이다. 따라서, 공교육을 정상화 시켜 내신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보완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오늘 굉장히 황당한 공약을 내 놓았다. 그 핵심은 국가가 대학입시를 관리하지 않고 대학 완전 자율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대학입시를 국가에서 관리하는 것은 모든 이에게 교육의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하고자 하는 목적을 담고 있다. 만약 지금 세계적으로 유명한 효능을 자랑하는 우리 인삼을 국가가 전매하지 않는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손쉽게 슈퍼가 상점에서 홍삼음료나 제품을 구매할 수 없을 것이다.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실용이라는 이름 아래, 20세기 초반에 막을 내린 순수자본주의 시대로 회귀하려는 듯한 역발상을 내 놓은 것이다.

대학입시가 자율화 되고, 국가가 관리에서 손을 떼게 되면 공교육은 말 그대로 사망이다. 우리나라 교육은 공교육 중심에서 사교육 중심으로 바뀌게 될 것이며, 학생들은 더 이상 학교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학교는 그야 말로 '학력인정'외에 다른 기능을 찾기 힘들어질 것이다. 학교 선생님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지금보다 더 심해질 것이다. 공교육의 오래된 이상인 '전인교육'은 꿈이 되고 만다.
 
이명박 당선자는 '교사들이 열심히 연구하면 공교육의 질은 저절로 높아질 것이며, 사교육과의 승부도 가능할 것'이라고 이야기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철저하게 자본으로 무장한 사교육의 하드웨어를 공교육이 따라잡는다는 것이 가능하리라 전망하는 것은 그 자체가 무능함이 아닐까. 이것은 '무능보다 부패가 낫다'는 신념으로 그를 대통령으로 밀어준 국민에 대한 명명박박(?)한 배신행위이다.

국민에게 의미있는 국가, 국가에게 의미있는 국민

국민은 영토, 주권과 함께 국가를 구성하는 3요소로 꼽힌다. 이것은 국가가 국민을 위해서 존재하여야는 분명한 이유이다. 더 나아가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의미있는 존재여야 한다.
이러한 국가의 숭고한 의무가 자본의 논리에 잠식되는 재앙은 피해야 한다. 그것은 실용 이전에 우리가 지켜야 할 최선의 가치관이다.

나는 이명박 당선자가 '국가는 국민에게 의미 있어야 한다.'는 사명감 있는 대통령이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국민 또한 국가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참으로 가치있는 일이다.

만약 대통령에게 그런 믿음이 없다면,
대통령이 된들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가 아무리 경제를 살린다 한들...(죽은 경제도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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